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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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혁

영암군의 11 읍면 중의 하나로 군의 북쪽에 위치하여 동쪽에는 도포면과 나주시 반남면(潘南面), 남쪽에는 덕진면과 영암천을 사이에 두고 군서면과 서호면이 있으며, 서쪽은 영산강으로 강 건너에 나주시 동강면(東江面)과 무안군 일로읍, 북쪽은 나주시 반남면, 공산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행정구역(1914년)이전에는 영암군의 북쪽 첫머리가 된다 하여 북이시면(北二始面) 이라 하여 쌍구(雙邱)리 등 56 마을 관활하였다가 일제강점기인 1914년 4월 1일 군, 면, 통폐합에 따라 나주군(羅州郡)의 종남면(終南面)이었던 달지(達池) 등 25 마을과 진도군(珍島郡) 명산면(命山面)의 화산(花山) 14 마을을 합하여 북이시면(北二始面)의 시(始)와 종남면(終南面)의 종(終)을 따서 시종면(始終面)이라 칭하였으나 내동(內洞), 월송(月松), 태간(泰澗), 만수(萬樹), 월롱(月弄), 금지(錦地), 월악(月岳), 신흥(新興), 신연(新嚥), 옥야(沃野), 와우(臥牛), 구산(九山), 봉소(鳳巢), 신학(新鶴)의 14개 법정리로 개편되여 현재에 이르고 영산강 유역 농업종합개발에 따라 해수면(海水面)이 없어지고 많은 농토가 늘어나서 농·어촌에서 전형적인 농촌으로 변화되었다.

마을 유래

시종면 마을 유래 - 법정리, 마을명, 유래 제공 표
법정리 마을명 유래
내동리(內洞里) 내동리1구
(매화촌, 원내동)
원래는 진도군 명산면 지역으로 낮은 산의 안쪽이 되므로 안골[내동(內洞)]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이시면의 매화촌, 쌍구리, 창동과 명산면의 안골을 병합하여 내동리1구라 한다.
내동리2구
(학송, 남송, 화산)
원래 진도군 명산면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도군 명산면 남풍리와 화산리를 병합하여 내동리2구라 함. 광산 노씨(光山蘆氏) 집성촌임.
내동리3구
(쌍무덤)
시종면 소재지 마을로 진도군 명산면의 만수리와 영암군 북이시면의 쌍무덤과의 경계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리3구라 함.
월송리(月松里) 월송리1구
(치리)
시종면 사무소에서 남쪽 1.5㎞ 지점에 위치한 본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인데 남쪽으로 본면에서는 제일 높은 태산봉과 남산봉이 앞에 보이는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이시면의 치리, 송정, 신당과 명산면 망월리를 병합하여 망월의 '월'과 송정의 '송'을 따서 월송리라 함. 연접한 내동리, 구산리, 봉소리 어느 쪽이든 재[치(峙)]를 넘어야 한다고 해서 '잿리'라고도 함. 김해 김씨(金 海金氏) 집성촌임.
월송리2구
(송산)
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2㎞지점에 위치한 본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으로 남쪽의 태산봉과 남산봉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마을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이시면과 명산면의 마을을 병합하여 시종면에 편입하여 월송2구 송산마을이라 한다.
태간리(泰澗里) 태간리1구
(명산, 금성)
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약 2㎞ 지점에 위치하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도군 명산면 송간, 금성, 상명, 입석, 구송, 중명리의 각 일부와 영암군 북이시면의 유곡, 명축, 회덕, 태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시종면에 편입됨. '태산'과 '송간'의 이름을 따서 태간이라 함.
태간리2구
(구송, 신송, 입석)
구송, 신송, 입석 등 자연마을이 태간리2구임.
만수리(萬樹里) 만수리
(원만수, 금천)
면 소재지에서 동쪽으로 800m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진도군 명산면 지역으로 만석굴 또는 만수리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6년) 영암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금천리, 회동, 만수동, 구송리 일부와 종남면의 신기리를 병합하여 만수리라 하여 시종면에 편입됨.
월롱리(月弄里) 월롱리
(원월롱, 청송, 야월)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의 월롱리와 야월리, 월산리, 미력동, 버섯굴, 전발동으로 부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월롱리로 부르게 되었음. 본 마을은 후백제 말기에 미력동, 성자동, 반학동, 삼사동, 황산동 5개 부락이 형성되어 있다가 고려조 왕건군에 대패한 견훤군의 패잔군에 의해 전 마을과 삼사찰이 소각되어 무주공산 시대가 몇 세기 동안 이어짐. 고려조 태사공 윤신달(尹莘達)의 23세손 윤복(尹福)이 대호군의 직책으로 임진왜란 때 전주성 격전에 참전하였다가 왜군에게 패하여 이곳까지 피신, 마을 후등에 위치한 전두산의 지산인 동두산 상봉에서 지세를 살핀바 300여년간의 안식처로 판단되어 정착했다고 하는데, 이미 정착 한 김해 김씨 문경공파 김탁이란 사람과 같이 개척하여 평산 신씨 정부인과 살게 되었다 함.
금지리(錦池里) 금지리1구
(앞배월, 송내)
본래 나주군 종남면에 속해 있었으나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남면의 달지리, 금내리, 송내리, 이동, 복룡동 일부와 영암군 북이시면의 학교리, 수롱리, 우두리, 시점리를 병합하여 '금내'와 '달지'의 이름을 따서 금지리라 하여 시종면에 편입되었음. 나주시 반남면 흥덕리와 군계에 위치하고 면사무소로부터 북단 4㎞ 지점에 있으며 이동과 송내 등 자연마을로 이루어짐.
금지리2구
(본촌, 종남)
시종면 소재지로부터 북쪽 4.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나주군 종남면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년)에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금지리 2구라 하였음. 본촌은 옛 나주군 종남면 소재지였음.
금지리3구
(달지, 쇠머리)
시종면 소재지로부터 동북쪽 3㎞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나주군 종남면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달지리와 영암군 북이시면의 쇠머리와 수롱리를 합하여 금지리 3구라 하였음. 교통도 편리하고 금지제란 큰 방죽이 있어 수리가 좋은 곳임. 신북면 월지리와 인접하고 있음.
월악리(月岳里) 월악리1구
(송월, 흑봉동)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6㎞ 지점에 있으며 삼포평야를 안고 나주시 공산면에 접하고 있음. 지형이 반달처럼 생겼으므로 다라기 또는 월동, 월악이라 함. 후삼국 때 고려군이 지나다 심었다는 당산나무가 반고사, 반생의 형태로 현존해 있고 1350년(경이년) 고려 충정왕때 진도군 명산면 지역으로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으로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시종면으로 통합되었음. 구동명, 송월, 월동, 목왕동, 흥복동을 합하여 이루어짐.
월악리2구
(상월)
면소재지로부터 북쪽 6㎞ 지점에 있으며 삼포평야를 안고 나주군 공산면과 반남면에 접하고 있고 원래는 진도군 명산면 지역으로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으로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월악리가 되었다. 구동명은 명동이며 현재는 상월인데 이곳이 월악리2구임.
월악리3구
(중계)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6.5㎞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삼포평야를 안고 나주군 공산면과 접하고 있음. 원래는 나주군 종남면이었으나 1350년 진도군 군수이하 관민이 피난해 와 진도군 명산면에 속하게 되었고 고종 32년(1895년)에 다시 영암군으로 편입되었음.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월악리가 되었는데, 중월과 계동마을을 합해 월악리3구 중계마을이라 함. 중월 서쪽 배사지가 서산 반월형이어서 달의 형국으로 보고 근방은 구릉이 얕은 산이어서 가왈악지라 명해 달악[달매기] 명칭이 된 것 같음.
월악리4구
(방두, 뒷배월)
면 소재지에서 북동쪽 6.5㎞ 지점에 위치하며 나주군 반남면과의 경계마을로 원래는 나주군 종남면의 방두리, 이골리를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월악리 4구 방두마을이라 하였음.
신흥리(新興里) 신흥리1구
(화수)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7㎞ 지점에 있으며 원래 나주군 종남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년) 영암군에 편입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종남면의 연촌리, 갈마리, 백운동, 신원리, 화수리와 반남면의 하대리 일부, 북이시면의 도락리, 송암리, 치등점, 진변리, 대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흥리라 하고 시종면에 편입하였음. 화수마을을 신흥리1구라 함.
신흥리2구
(백운동, 원신흥, 갈마동)
원신흥, 백운동, 갈마동을 신흥리2구라 함.
신흥리3구
(솔메)
큰솔메, 작은솔메를 합하여 신흥리3구라 함.
신흥리4구
(새원)
새원마을을 신흥리4구라 함.
신연리(新燕里) 신연리1구
(연소, 신안동)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주군 종남면의 연소리, 신안리, 방축리, 사정리, 사동리와 영암군 북이시면의 신사리, 대교리 일부를 병합하여 시종면에 편입하였음. '연소(燕巢)'와 '신사(新砂, 샛몰)'의 이름을 따서 신연리라 함. 연소는 지형이 연소형(燕巢形)이라 붙여진 이름. 남평문씨 집성촌임.
신연리2구
(방축, 꼬막등, 모샛물)
시종면 사무소에서 북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모샛몰이라고도 부르고 사리라고도 불렀음. 새모실, 뒷모실, 방축안을 합하여 신연리2구라 함. 꼬막등은 지형이 꼬막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
옥야리(沃野里) 옥야리1구
(중천, 서촌)
면 소재지로부터 북방 4㎞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나주군 종남면 관할 지역으로 고종 32년(1895년)에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산리, 서촌리, 당두리, 남성리, 상동과 북이시면의 중촌리, 안동, 장동, 남산리를 병합하여 시종면 옥야리라 함. 예부터 기와를 구웠으므로 왕골, 외얏골, 오야촌, 옥야 효동이라 했음. 중촌과 서촌 등 자연마을로 이루어짐.
옥야리2구
(상촌)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나주군 종남면 지역으로 효동 또는 상촌이라 불렀는데 고종 32년(1895년)에 영암군으로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옥야리 2구라 하였음.
옥야리3구
(장동)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3.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영암군 북이시면에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시종면 옥야리 3구로 부르게 되었음.
옥야리4구
(신산, 남해포)
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나주군 종남면의 몰모실과 남해당이 고종 32년(1895년)에 영암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옥야리 2구에 속하였다가 1987년 옥야리 4구로 분구된 마을이다.
와우리(臥牛里) 와우리1구
(원와우)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지형이 누운소 형국이라 하여 누리 또는 와우라 하였다. 누리, 소아래, 박새암골, 새터로 원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정리, 박천리, 계산리, 여천리, 갈곡리, 연안동, 화정동, 후등과 병합되어 와우리란 이름으로 시종면에 편입되었음.
와우리2구
(갈곡마을)
면 소재지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닭머리, 화정동, 갈곡리, 김생동을 합하여 시종면 와우리 2구라 하였음. 갈곡(葛谷)은 칡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임.
와우리3구
(닭머리, 화정동)
계산(鷄山, 계메, 닭머리)과 계산 동남쪽의 화정마을을 합해 와우리3구라 함.
와우리4구
(우정, 여천)
시종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와우리 이천동이라 하였다. 이천동은 처음에 새암골이라 불렀는데 어느 원님이 지나가다 물을 마시면서 철철 넘치는 맑고 푸른 샘을 보고 여천이라 이름을 지었다 함. 우정(牛亭)은 누리 동쪽 소아래 마을임.
구산리(九山里) 구산리1구
(원구산, 새까치)
면 사무소에서 서쪽으로 4.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정리, 회정리를 병합하여 구산리라 하였음. 마을 뒷산이 거북이같이 생겨서 거북 구자[龜] 구산이라 부르다 지금은 아홉 구자[九] 구산으로 쓰고 있음. 달성배씨 집성촌임.
구산리2구
(송정마을)
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처음에 기씨가 살았고 마을명을 노전이라 하였는데 함양 박씨 영정께서 입향케 되면서 집성촌을 이루었다. 원구산 동쪽 소나무 정자가 있다 해서 송정(松亭)마을임.
구산리3구
(화정, 육거리, 태정)
면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산리3구 회정마을로 부르게 되었음. 연대는 미상이나 창원 황운 서씨가 처음 살았는데 당시는 마을이름을 고작동으로 불렀음. 1842년 경에 오연왕(동복인)씨가 금정면 용천리에서 이주해 오면서 광산정씨도 이주케 되어 마을이름을 어로동으로 부르다 구한말부터는 회정으로 불러 오늘에 이르고 있음. 방적동(일명 방자골)은 운촌 오창환(동복인)씨께서 처음 개지, 주택을 건립한 후 마을이 형성되어 7~8호의 마을이 되었음. 오창환씨는 풍수지리학에 능통하였고 집터 주위에 아홉 개의 바위가 있어 집터를 옹호한다고 하였음. 태정마을(일명 새동네)은 1986년경 주암댐 건설로 인하여 22여호가 이주, 정착한 마을이다. 이들의 지존자 파주인 염동출은 길몽을 얻어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함. 운촌 오창환씨께서 생전에 예언하시기를 이곳이 태봉산 밑에 큰 마을이 형성될 것이라 하였다 함. 염동출은 6.25 동란 참전 용사로 화랑 무공훈장을 받은 국가 유공자임.
봉소리(鳳巢里) 봉소리1구
(원봉소, 철두)
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4㎞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철두리, 봉암리, 괴목리, 수동리, 대호정, 연동, 조동을 병합하여 봉소리라 하였음. 진주 강씨 봉암(鳳巖) 강연(姜淵) 선생께서 임진왜란때 우국창이로 피신차 1597년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정착하게 되었는데 처음에 마을이름은 봉곡이라 하였으나 그 후 봉소정으로 부르다 현재는 봉소리라 부름.
봉소리2구
(조동, 연동, 괴목정)
시종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3.5㎞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으로 연동과 괴목정, 하조동, 상맹동을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시종면 봉소리 2구라 하였다.
신학리(新鶴里) 신학리1구
(신항, 연화동)
면 소재지에서 남서쪽으로 7㎞ 지점에 위치한 마을로 원래는 영암군 북이시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우암리, 행화리, 반학리, 신항리, 구골리, 연화리, 신원목, 마분점, 각동, 정동과 종남면의 학림리를 병합하여 '신항'과 '학림'의 이름을 따서 신학리라 하여 시종면에 편입하였음. 약 350년 전 이웃인 영암군 도포면(북일종면) 원항리 항동에서 이주하였으나 식수에 어려움이 있던 중 어느 날 큰 스님이 와서 마을 중앙부에 정호의 위치를 정하여 주면서 식수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충효는 물론 부귀와 무병장수를 누리면서 큰 마을을 이루고 살 터라고 일러 주어서 샘을 판즉 청수가 넘치어서 식수가 해결되었다 함. 그 후 도포면 항동에서 한 집 두 집 옮아 와 큰 마을을 이루게 되어 마을이름을 신항이라 부르게 되었음. 동으로는 도포면 원항리와 면계를 두고 남서로는 영산강과 영암 덕진강에 접해있음.
신학리2구
(정동)
정동마을과 각동 마분점을 합하여 신학리2구 정동마을이 되었음. 신학리에서 가장 큰 마을에 큰 샘이 있어 샘몰이라 불렀으며. 지금도 대보름마다 정동우물제를 지내고 있음.
신학리3구
(학림)
학림(鶴林)마을이 신학리3구이임.
신학리4구
(반학)
학모양의 반학동이 신학리4구임.
신학리5구
(우암)
옛날 마을 앞 뚝이 잘 터져 피해가 많으므로 도사의 말을 듣고 산 아이를 제물로 묻고 뚝을 쌓았다는데 그 아이의 이름이 소바우였다 함. 우암(牛岩)이란 이름은 거기서 유래함.
만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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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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