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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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인물고(人物考)1

편저자 : 한치윤   |   번역자 :   |   유형 : 기타( 역사 )   |   쪽수 : 왕인1   |   총권수 : 70권
해동역사(海東繹史) 인물고(人物考)1 이미지 1

○ 왕인은 백제국 사람인데, 본디는 한(漢)나라 고제(高帝)의 말손(末孫)이다. 고제의 후손 가운데에 난(鸞)이란 사람이 있으며, 난의 후손 가운데에 왕구(王狗)란 사람이 있고, 왕구의 후손이 왕인이다. 왕인은 여러 경전(經典)에 능통하였으며, 또 사람들의 관상(觀相)을 살필 줄 알았다. 응신천황(應神天皇) 15년에 백제의 구소왕(久素王) -살펴보건대, 구수왕(仇首王)의 잘못이다.- 이 아직기(阿直岐)를 파견하였다. 당시에 아직기는 능히 경전을 읽을 줄 알았으므로, 황자(皇子)인 토도아랑자(菟道雅郞子)가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응신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너보다 더 뛰어난 박사(博士)가 있는가?” 하니, 아직기가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저보다 더 뛰어납니다.” 하였다. 천황이 백제에 사신을 파견하여 왕인을 불러오게 하였다. 다음 해 2월에 왕인이 《천자문(千字文)》을 가지고 와서 조회하였다. 왕인이 《효경(孝經)》과 《논어(論語)》를 가지고 황자인 토도아랑자에게 가르치니, 황자가 왕인을 스승으로 삼아서 여러 전적(典籍)을 익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에 유교(儒敎)가 비로소 본조(本朝)에서 행해졌다. 왕인이 또 난파진가(難波津歌)를 읊고 인덕천황(仁德天皇)의 보조(寶祚)를 축원하였으므로 그를 가보(歌父)라고 불렀다. 왕인이 죽자 우두천황(牛頭天皇)과 합제(合祭)하였다. 왕인은 서수(書首) 등의 시조(始祖)이다.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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