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인박사유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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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역사(海東繹史) 교빙지(交聘志)9

편저자 : 한치윤   |   번역자 :   |   유형 : 기타(역사)   |   쪽수 : 일본(日本)과 통교(通交)한 시말(始末) - 아직기, 왕인   |   총권수 : 70권
해동역사(海東繹史) 교빙지(交聘志)9 이미지 1

-진나라 무제 태강 5년이다.- 응신천황 15년(284, 고이왕51) 가을 8월 정묘에 백제의 왕이 아직기(阿直歧)를 파견하여 《역경(易經)》, 《효경(孝經)》, 《논어(論語)》, 《산해경(山海經)》 및 양마(良馬) 2필을 바쳤다. 아직기는 경서(經書)에 능통했으므로 태자인 토도아랑자(菟道雅郞子)의 스승으로 삼았다. 처음으로 경전을 배움에 응신천황이 아직기에게 묻기를, “너희 나라에는 너보다 더 뛰어난 박사(博士)가 있는가?” 하니, 아직기가 대답하기를, “왕인(王仁)이라는 사람이 저보다 더 뛰어납니다. 그는 수재입니다.” 하였다. 이에 상모야군(上毛野君)의 선조인 황전별(荒田別)과 무별(巫別)을 백제에 파견하여 왕인을 불러오게 하였다. 다음 해 봄에 왕인이 《천자문(千字文)》을 가지고 왔다. 토도아랑자가 왕인에게서 여러 전적(典籍)을 익혀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난파황자(難波皇子) 역시 그러하였다. 이에 유교가 비로소 일본에서 행해졌다. 《상동》 ○ 《화한삼재도회》에, “《동국통감(東國通鑑)》에 의하면 삼한(三韓)에 유교가 시작된 것은 인덕천황(仁德天皇) 때에 해당되는바, 여기서 말하는 때와는 차이가 있다.” 하였다. ○ 《이칭일본전(異稱日本傳)》에, “응신천황 15년 갑진에 비로소 백제를 통하여 중국의 문자가 들어왔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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